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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백의 패드 행진, 빛고을 가로지르다10월 22일~23일 열린 광주 ‘무등산 볼더링 페스티벌’ 참관기
    임덕용 | 승인2017.01.06 15:16
    약 400명의 참가자들이 바위가 있는 선비바위로 올라가고 있다. 패드를 멘 행렬이 장관을 이뤘다.

    광주로 내려가는 동안 바라본 들판에는 누런 황금빛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잔잔한 파도가 바람에 일렁이며 부르는 노래는 농부가의 판소리처럼 흥겹기만 했다. 그 가락이 내 귀에 직접 들리는 것처럼 느껴져 멀리 보이는 허수아비를 껴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무등산 아래 한 할머니가 머리에 수건을 둘러메고 수확을 앞둔 벼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이게 내 몫인가, 저게 내 몫인가, 나눌 것도 없이 할머니는 우리 모두의 누런 벼를 한 아름 안아들었고, 그 살랑거리는 벼 머리 사이로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커다란 패드를 메고 행진하는 게 보였다.

    이 모습이 나에겐 마치 전쟁통 피난민들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실로 장관이었다. ‘어디에서 저 많은 볼더러들이 나타났단 말인가?’ 같은 날 대구에서 ‘블랙 다이아몬드의 행사’가 있었고, 강원 지역에서는 대회가 있었지만 서울은 물론 안동, 진주, 부산, 제주도에서까지 볼더러들이 몰렸다.

    약 400명의 참가자들이 바위가 있는 선비바위로 올라가고 있다. 패드를 멘 행렬이 장관을 이뤘다.

    이들은 10월 22일과 23일 광주시 북구 금곡동 무등산 선비바위 일대에서 열린 ‘무등산 볼더링 페스티벌’ 참가자들이었다. (사)광주 클라이밍센터 연합회와 광주 드림 신문사가 주최한 이 축제는 무등산에 만들어진 버려져 있었고 가려져 있었던 축복 받은 보물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여기저기서 탄성과 환호
    참가자들은 행사 접수와 함께 로고가 그려진 3가지의 티셔츠를 받았고, 수 백 명이 이 티셔츠를 종류별로 입고 다니는 게 장관이었다. 행사의 공식 일정은 10월 22일 토요일 13시에 시작됐다. 이때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에코 선언’이었다. 자연 보호는 미래 등반가를 위한 십계명이다. 쓰레기를 가지고 내려오자는 것이야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벽에 남겨진 초크 자국까지 지우고 가자는 말에 작은 감동을 느꼈다.

    루트 개척 보고회와 등반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 국립공원 내에서의 허가받은 등반이니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말자는 참가자들의 선서가 끝나자 좁은 등산로로 수 백 명이 긴 줄을 서며 오르다가 무리지어 작은 돌을 찾아갔다. 그러자 곧 여기저기서 탄성과 환호의 외침이 울렸다.
    자연보호 차원에서 등산로 옆으로 설치 된 빨래줄 같은 흰색 고정 로프가 애처롭게 보였지만 넘어서는 안 되는 선으로 생각하고 참가자들은 규칙을 지켰다. 사람들은 날이 거의 어두워질 무렵까지 여기저기서 등반을 즐겼다.

    이번 무등산 볼더링 페스티벌의 슬로건은 에코등반실천 선언에 있었다. 등반지 주변을 깨끗이 하자는 뜻이 담겼다.

    저녁 식사 후 여러 부대 행사가 있었다. 가장 눈길을끌었던 행사는 연령별 클라이머들의 토론시간이었던 ‘라운드 테이블’이었다. 이 자리에는 20대 천종원 선수, 30대 엄혜령 선수, 40대 이재용 감독, 50대 박신영 광주 클라이밍센터 회장, 60대 한상훈 한국 스포츠 클라이밍 월 협회 회장이 참석했다. 이들은 스포츠클라이밍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과 관련해 국내 상황과 보완해야 할 점에 대해 자신들의 의견을 냈다.

    20대 대표 천종원 선수는 올림픽에 대비 “개인적으로 볼더링·리드·스피드 3종목 통합이 아닌 각자 나눠졌으면 좋겠는데, 이미 결정이 났으니 주어진 조건에서 노력해야 한다”며 “일본이나 프랑스, 슬로베니아 같은 나라들은 선수들에게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투자가 더 이뤄지면 선수들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30대 대표 엄혜령 선수는 “본인에 가장 적합한 주 종목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올림픽이 대중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주장했다.

    무등산 볼더링 페스티벌에 참가한 사람들.

    40대 대표 이재용 감독은 “자연암벽에서의 등반, 실내암벽에서의 등반 모두 각자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며 “통제할 수 없는 자연에서의 등반도 주눅 들지 않고 도전한다면 매력에 빠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고, 올림픽을 대비해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아이디어를 발표하며 어떤 선수를 어떻게 출전시키느냐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50대 대표 박신영 회장은 “상업화와 대중화로 클라이밍 저변은 확대됐지만 ‘알피니즘, 즉 사람이 좋아서 하는, 산이 좋아서 하는 클라이밍의 본래 매력은 많이 희석된 것 같다”며 “스포츠 클라이밍의 뿌리인 알피니즘도 앞으로는 동반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60대 대표 한상훈 회장은 “세 종목을 다 잘하는 선수는 우리나라에 많지 않다”며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일이지만 경기방식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만큼 각 종목을 나누는 방식을 계속 밀어부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트라 클링거의 등반. 이날 여러 어려운 루트에서 여성 초등을 기록했다.

    선비바위 볼더링, 한시적 개방
    무등산 선비바위 일대에는 볼더링이 가능한 100여 개의 바위가 있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볼더러들이 등반한 바위는 113의 ‘루트’가 개척된 36개 바위다. 현재 무등산에는 40개 바위에 루트가 개척돼 있다. 이번 페스티벌은 ‘대회’, ‘경쟁’’이 아닌 ‘축제’형식으로 진행됐다.

    총 5개로 구성된 구역은 S, U, N, B, E 의 이름이 붙었고, 각 구역에는 나무나 암벽 밑에 루트를 잘 설명한 개념도 사진이 방수 포장이 되어 있어 치밀한 준비에 참가자들은 감사를 표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2015년 볼더링 남자부문 세계랭킹 1위에 오른 바 있는 천종원 선수(아디다스 클라이밍 팀 소속)도 행사에 참가했다. B29 에서 몸을 풀고, N19 바위의 V12등급은 시도 두 번 만에 초등 기록을 세웠다. 초등 볼더러가 코스 명을 짓는 전통에 따라 천 선수는 이곳을 ‘보릿고개’로 명명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무등산은 국내최고 암벽등반지로 꼽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천종원 선수의 등반. 천 선수는 이날 N19 바위의 V12등급 '보릿고개'를 시도 두 번 만에 초등하는 기록을 세웠다.

    천 선수가 말한 무등산 선비바위의 최대 장점은 “바위 간 접근성이 좋고 초보자와 실력자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다양한 루트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행사장 반경 200m 안에 100여개의 바위가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바위들은 작은 것은 높이 2~3m 정도며, 큰 바위는 높이 7m로 다양했다.

    국내 마지막 숨겨진 볼더링 명소가 된 선비바위 일원은 무등산국립공원 사무소와 토지 소유주들의 협조를 통해 6개월 간 한시적으로 등반 허가가 이뤄진 상태이다. 볼더러들이 많이 찾고, 자연 보호가 잘 이뤄진다면 지속적인 개방도 가능할 수 있다. 행사 이틀 동안 국립공원 직원들이 등반을 관람하며 클라이머들과 같이 동화되는 것을 보았고, 실지로 같이 등반하는 관리 공단 직원들도 있었다.

    페트라클링거와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

    참가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이끼까지 보호된 암벽에서 처음에는 너무 자연스러워 조심스러웠지만 바위의 ‘암질’이 독특하다는 점을 제일로 꼽았다. 원시림 같은 약간은 습한 듯한 숲의 내음과 솟아오를 듯 꿈틀거리며 살아 있는 바위들은 짜릿한 손 끝 맛을 아는 볼더러들의 DNA를 자극하는 곳 이었다.

    무등산 볼더링 페스티벌을 보며 느낀 점은 한 사람의 클라이머가 미치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가를 가늠할 수 있는 자리였다. 무등산 일대에서는 김덕령 장군을 비롯한 많은 선열·지사(志士)·문인, 예술가, 정치인 등이 배출되었으며, 무등산의 정기가 광주학생운동을 일으킨 원동력이 되었고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자유화의 기둥이 되었다면, 무등산 볼더링 루트 개척을 한 한 사람은 국내 볼더러들을 미치게 하고 영원한 만족감을 줄 것이다. 

    등반자의 확보를 보는 사람들.

    너무 좋았다! 내년에 다시오겠다!
    4박 5일간의 한국 방문 중 월드 볼더링 챔피언 페트라 클링거(Petra Klinger)는 폭풍처럼, 번개 같이 등반을 하고 갔다.

    도착 당일 K2 C&F에서 몸풀기로 V7급 루트를 등반하고 김종곤 센터장, 김대엽 선수등과 조우했다. 다음 날은 한국 그리벨 오호근 대표와 쎄로또레 문성욱 부장과 인수봉 빌라 길(5.12b)과 해우길(5.12b) 을 등반했다. 백해숙(마무트 엑셀시오 점장)과 파트너가 된 사진 촬영이 목적이었지만 페트라는 선등을 하며 시원하게 온사이트 등반을 즐겼다. 등반을 마친 뒤 저녁에는 코오롱 등산학교 실내 빙장을 구경했고 뒤이어 페트라는 쎄로또레 심수봉 사장이 연 공식 환영 저녁 식사에 참석했다.

    우리나라의 화강암 슬랩은 유럽 클라이머에게 쥐약이다. 손과 발에 잡히지 않는 홀드 찾기란 페트라에겐 마치 어려운 미로를 헤매는 것과 같았을 테지만 그녀는 인수봉에서의 등반을 ‘새로운 세계’라며 즐거워했다. 등반을 하다가 등 뒤의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우주 정거장에서 등반하는 기분이었다”며 놀라기도 했다.

    광주 무등산 볼더링 페스티발 주최 측의 초청과 한국 그리벨, 라스포르티바에서 후원을 한 그녀의 한국행은 선운산에서 꽃을 피웠고, 무등산 볼더링 페스티발에서 열매를 얻었다. 새내기(6c, 5.11b) 와 96 남자 예선(7a+ & 7b, 5.12ab)은 온사이트 등반을 했고, 노력하는 사람(7b, 5.12b)은 플래싱으로 성공했다. 투구 바위의 진달래 탈춤(8a, 5.13b)은 2번 등반을 시도했지만 완성을 못했다. 시차와 장시간 차량 운행 등 몸 컨디션 조절에 어려웠으리라.

    8세의 어린이에서부터 근 70세의 청춘들까지 약 400명이 모인 이번 무등산 볼더링 축제에서 페트라는 겸손한 여 주인공으로서 천종원 선수와 같이 여러 무브로 문제를 풀었다. 둘의 몸짓에 참가자들을 감동을 얻었고 잇따라 감탄을 내뱉었다. 유명 골프 선수가 펼치는 경기의 갤러리들처럼 많은 클라이머들이 이들을 따라 다니며 한 수 배우기를 원했다.

    여러 난이도에서 우아한 동작을 선보인 페트라는 이윤재 주최자가 초등한 ‘낭만여행(V7)’의 재등자가 되었고 여성 초등을 온사이트로 이뤘다. V9~V10급의 볼더는 높이가 7m가 넘어 상단 추락 시 부상 위험이 커서 두 번 정도 시도 후 본인이 말린 끝에 다른 등반지로 이동하기도 했다.

    그녀는 헐크 같은 근육질의 넓고 넓은 어깨로 연신 파워풀하고 다이내믹한 동작을 구사했다. 이에 많은 한국 등반가들은 이구동성 “우리와 전혀 다른 방법으로 등반한다. 우리와 다른 눈을 가지고 있다”며 감탄했다. 챔피언의 등반능력 보다 챔피언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점은 벽을 바라보는 눈, 즉 벽의 길을 찾는 것이라는 점을 증명하듯 그녀가 한국에서 펼친 등반은 여러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줬다.

    “페트라는 우리와 다른 시각을 가졌다!”
    그녀는 여섯 살 때부터 부모와 등반을 하면서 선등을 했고, 성장하고 나서는 두 번의 월드컵 볼더링 챔피언과 드라이툴링 챔피언을 했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스피드 클라이밍 선수에서 볼더링 선수로 왕좌에 올랐고, 2020올림픽을 위해 내년부터는 리드 대회에도 나간다고 했다.

    올림픽 암벽 등반 경기의 윤곽이 나타났기 때문에 스피드, 볼더링, 리드 3개 종목의 경기를 한 선수가 모두 소화해야 한다. 스피드 전문 선수가 리드나 볼더링을 섭렵하기는 어려워도 볼더링 선수가 지구력이 필요한 리드와 스피드는 비교적 적응하기 쉬운 편이니 페트라에게는 여러 면에서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5일째 새벽 그녀가 출국길에서 남긴 말이 인상적이었다.
    “정말 집에 가고 싶지 않아요. 대학(스포츠 공학과 스포츠 경제학 전공) 문제만 아니면 비행기표를 바꾸고 다시 선운산과 무등산으로 달려가고 싶어요. 내년에 제 코치와 같이 올 것 입니다. 제 코치에게 이 놀라운 등반 환경을 보여주고 싶어요. 한국 같은 등반 조건(서울 인수봉, 코오롱 등산학교 시설과 케이투 C&F, 한국인들의 등반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스위스 국가 대표들에게 있다면 세계 등반사를 바꾸었을 것 입니다” 페트라 클링거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분명 세계 등반 사를 바꿀 수 있는 환경이 이미 만들어져 있다는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도전하는 자만 나오면 된다.


    임덕용  imdogri@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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