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 HOME Climbing
    미국 본토 최고봉, 휘트니(Mt. Whitney) 산 등반기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보석
    글 인성식, 사진 이현상 | 승인2016.06.21 10:00
    등반의 마지막을 장식한 이현상 제로그램 대표. 왼쪽 설사면 발자국들이 이곳에서 가장 인기 많은 코스인 마운티어링 루트다.

    “성식아, 너 휘트니 산(Mt. Whitney, 4421m) 등반갈래?”
    “휘트니요? 누가 가는데요?”
    “유학재 선배하고 몇 명 또 있어.”
    “그럼, 전 무조건 갈게요”
    이렇게 간단하게 나의 휘트니 산 등반이 결정되었다. 우리는 출국 일주일 전 대둔산에서 한차례 합동등반을 마치고 일주일 후, LA에서 휘트니 등반을 위해 다시 만났다.

    [글 - 인성식 / 사진 - 이현상_젠 아웃도어 대표]

     

    휘트니로 떠나는 여정
    한국에서 온 5명(유학재, 이현상, 원기정, 김광수, 인성식)과 미국에 거주하는 3명(강신일, 이주영, 폴)으로 구성된 여덟 명의 원정대는 두 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휘트니 산의 등반기점인 론 파인(Lone Pine)으로 이동했다. LA에서 론 파인까지의 이동시간은 5시간 정도 걸린다고 운전을 하는 강신일 대원이 얘기했다.
    한참을 달려 동부 시에라 방문객센터(Eastern Sierra Visitor Center)에 도착했다. 여기서 비상연락처와 등반일정, 등반계획 등을 신고하고 휘트니 포털(Whitney Portal)야영장으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가며 눈이 없음에 새삼 안도했다. 눈이 있었다면 저 아래서부터 3시간 정도를 걸어 올라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야영장에 도착한 우리는 어둠이 오기 전에 텐트를 설치하고 등반계획을 점검했다. 등반 첫날은 마운티니어 루트(Mountain route)로 휘트니 정상을 다녀오고 둘째 날은 이스트 버트레스 루트(East Buttress route) 로 등반해 정상에 오르기로 했다. 몇몇 대원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고 또 다른 대원들은 식탁 옆 바위에서 가벼운 볼더링을 했다. 나는 원기정, 김광수 대원과 함께 맨바닥에 매트리스와 침낭을 깔고 잠을 청했다. 긴장과 설렘으로 잠들 것 같지 않은 밤이었으나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암벽의 첫 피치를 등반 중인 대원들.

    새벽에 일어나보니 부지런한 원기정 대원이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덕분에 여유 시간이 생겨 모든 준비를 마치고 8시에 휘트니 포털 야영장을 떠났다. 4월 햇볕은 따뜻하게 느껴졌고 그늘은 시원했으나 약간 서늘한 느낌이 몸에 와 닿았다. 등산로 좌, 우로 펼쳐진 깎아지른 바위 절벽들은 설악산 장군봉과 눈 덮인 토왕골을 연상시켰다.

    호기로웠던 걸음걸이도 본격적으로 시작된 설상구간에서는 맥을 못 추고 더딘 걸음으로 바뀌어 고도가 높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적당히 얼어붙은 눈과 때론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앞으로 나가자 오늘 야영할 캠프 사이트 뒤 바위산군들이 눈앞에 펼쳐져 보였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를 무렵 한순간 머릿속이 띵하더니 어지러움이 찾아와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했다.

    현재 고도가 3500m 정도라 하니 말로만 듣던 고소증세인가 싶다. 7시간 정도를 걸어 오늘의 목적지인 어퍼 보이 스카웃 레이크(Upper Boy Scout Lake)에 위치한 캠프에 도착했다. 주변의 널린 돌을 이용해 식사자리를 만들던 유학재 대장을 돕다가 다시 어지러움 증상이 나타나 바위에 기대어 휴식을 취했다. 그러고보니 3000m 이상에서 산행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저녁 식사 후 폭풍우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등반 일정을 변경하기로 했다. 이현상 대원의 제안으로 다음 날 이스트 버트레스 루트를 먼저 등반하고 마운티니어 루트는 날씨 상태를 봐서 진행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잠자리에 들었다. 마침 밝은 보름달이 캠프 위 하늘에 떠올라 주변의 침봉들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쉽게 잠들지 못하고 주변을 감상하다 다음 날 등반을 위해 침낭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첫 피치를 등반 중인 필자.


    3500m의 베이스캠프, 400m의 등반
    새벽 3시, 약속된 시간에 일어난 등반대원들은 간단한 식사로 속을 채웠다. 몸이 좋지 않아 함께할 수 없다는 강신일 대원과 이주영 대원을 뒤로하고 유학재 대장을 선두로 이현상, 원기정 대원과 함께 올랐다. 약간의 시간을 두고 설사면의 경사진 부분을 따라 고도를 높인다. 어퍼 보이 스카우트 베이스캠프는 3500m고 오늘 우리가 등반할 휘트니 산은 4421m여서 900m 가까운 고도를 높여야 한다. 하지만 어제 겪은 고소증세 때문에 걸음걸이는 더딜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꾸준한 걸음으로 설사면을 따라 올랐다.

    경사가 완만한 곳에 이르자 숨을 고르며 올라온 길을 돌아보니 휘트니 산의 아침이 시작되려는 듯 주변이 환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바위 면을 돌아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오늘 등반할 휘트니산과 그 옆에 사진으로 보아온 킬러 니들봉(Keeler Needie Peak)이 나란히 붙어 아침 해를 받아 붉게 빛나고 있었다.

    휘트니 산 등반은 인공 확보물이 전혀 없어 스스로 설치해야 한다.

    3시간에 걸친 휘트니 산 어프로치가 끝나고 우리는 장비를 착용하고 유학재 대장이 설치한 고정로프를 따라 이스트 버트레스의 등반 시작점에 모였다. 유 대장의 배려로 오늘 등반은 내가 선등으로 나서기로 한다. 오전 9시가 되었을 무렵, 출발 신호와 함께 유 대장의 확보로 등반을 시작했다. 고정 확보물이 없는 바위 면을 따라 캠과 슬링을 연결해 크랙에 설치하고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적당한 지점에 확보지점을 구축하고 피치를 종료하며 후등자 확보를 하는 시스템으로 등반을 이어나간다.

    이스트 버트레스는 크랙이 많고 바위 돌기 면이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곳으로 5.8 정도의 등반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 400m가 넘는 바윗길을 100m 로프 한 동으로 4명이 등반하는 속도가 더뎠는지 3피치에서 유 대장이 베이직을 이용해 고정된 로프를 따라 오르고, 이현상 대원과 원기정 대원이 확보를 통한 등반을 했다. 

    고도는 높았지만 등반의 어려움은 없어 순조로웠다. 다만 지금의 휘트니 산은 본격적인 등반시즌이 아니므로 햇볕은 따뜻했지만 그늘은 한기를 느낄 정도로 춥고 불어오는 바람 또한 몹시 차가웠다. 그늘 속에 가려져 있던 홀드를 만졌을 땐 손가락 마디에 감각이 없어져 버릴 정도로 차가웠다. 무엇보다 최소한의 장비만을 가지고 등반했기 때문에 확보 간격이 멀어 추락 시 치명적인 위험성이 있었다. 그러나 경험 많은 유학재 대장이 옆에 있어 마음의 부담 없이 안정된 등반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대원들이 오른 이스트 버트래스 전경. 가운데 설사면을 따르다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 능선으로 오르는 루트다. 전체 구간의 난이도는 5.8 난이도지만 고소를 감안한다면 그리 녹녹치 않다.

     

    13시간에 걸친 등반 끝에 정상에 서다
    5피치 종료지점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2시간 후면 등반이 끝날 거라 생각해 행동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유학재 대장이 올라오기만 기다렸지만 어찌 된 일인지 한 시간이 지나도록 로프는 움직임조차 없다. 계속 그늘에 있어 몸은 춥고 마땅히 앉아 있을 곳도 없어 눈 위에 배낭을 깔고 앉아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있는데, 원기정 대원에게서 무전연락이 온다. 5피치 출발지점으로 다시 내려와 달라는 내용이다.

    눈의 발자국으로 인해 다행히 길을 놓치지 않고 쉽게 갈 수 있다.

    로프를 따라 클라이밍 다운을 하여 출발지점이 보이는 곳까지 내려와 보니 크랙에 로프가 끼어 고전하는 모습이 보인다. 암각에 확보를 하고 크랙에 끼인 로프를 빼내 등반이 진행되도록 한 뒤, 원기정 대원과 함께 5피치 종료지점에 올라오니 잠시 후 유학재 대장이 올라온다. 시간은 오후 5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현상 대원의 확보를 원기정 대원에게 맡기고 유학재 대장과 나는 곧바로 옆으로 이동해 새로운 확보지점을 만들었다. 이미 이곳을 등반한 경험이 있는 유대장의 루트 파인딩으로 등반을 이어 나갔다. 

    6피치를 끝냈을 때는 이미 해가 정상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등반 내내 보았던 주변의 멋진 풍경들도 어둠이 찾아오면 공포의 대상으로 바뀐다. 좋지 않은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생각하니 섬뜩하게만 느껴졌다. 너무 높이 올라왔기에 내려가지도, 탈출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오로지 오르는 것만이 살길이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정상을 향해 오르던 우리 일행은 난관에 부딪쳤다.

    길을 잘 못 찾아온 걸까, 눈앞에 보이는 길이라고는 어깨너비로 벌어진 크랙도 아니고 침니도 아닌 촉스톤이 박힌 오버행의 바위틈새였다. 다행히 촉스톤은 안정적으로 확실하게 박혀있어 캠을 설치하고 슬링을 연결해 사다리 삼아 간신히 일어섰다. 그곳을 빠져나와 10m 정도 오르니 어둠이 사라지고 환한 빛이 주위를 밝힌다. 정상에 가려 보이지 않던 해가 무인대피소 너머로 사라져 가며 남은 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올라가야 할 벽은 없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그늘이 지기 시작하더니 바위를 만지는 손이 차가워 등반을 하다 손을 비비면서 올라야 했다. 급기야는 동계용 장갑을 사용했다.

    출발지점에서 보았을 때는 ‘과연 쉴 곳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파른 벽으로 보였지만 휘트니 산 정상에는 제법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었다. 로프를 고정하고 유학재 대장에게 신호를 보내 세찬 바람이 부는 정상을 거닐어 보았다. 해가 있을 때 보았던 시에라 산맥도 서서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려 했다. 아직 완전한 밤이 시작되기 전이라 정상 풍광을 바라볼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돌아다니다보니 이곳이 휘트니 산 정상임을 알리는 동판 하나가 바위에 붙어있다. 추위를 피해 볼 요량으로 대피소 문을 열어보려 했으나 두 개의 문은 잠겨 있었다.

    이제 배고픔보다는 현실적으로 닥친 추위가 더 큰 문제다. 이럴 때 ‘대피소문이 열려 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뒤로하고 마지막 등반종료지점으로 돌아와 보니 유학재 대장이 마지막 구간을 통과하여 정상에 도착했다. 이어서 원기정 대원과 이현상 대원도 차례차례 정상에 올라 등반을 종료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촉스톤이 박혀있던 구간에서 다들 애를 먹었다고 한다. 더구나 이현상 대원은 바람이 들어오지 않아 10분이라도 자고 싶었다고 하니 루트파인딩을 잘못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되새겨 볼 일이다. 

    등반이 종료된 시간은 9시 무렵이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추위에 맞서 하산하는 일만이 남아있었다. 잠시만이라도 추위를 피해 쉬었다가 하산했으면 하는 순간,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유학재 대장이 잠겨있던 문을 연 것이다. 이제 추위와 배고픔을 해결할 공간이 생겼다. 다들 배낭 안에 들어있던 행동식을 꺼내 허기진 배를 채운다. 정상에 올라섰다는 기쁨보다는 배고픔과 추위를 피한 것이 더욱 기뻤다. 오랜 시간 추위에 노출되었던 몸도 조금의 휴식으로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다시 배낭을 꾸려 하산하기 위한 이동을 하는데 유학재 대장이 하강포인트를 잡고 캠을 설치하여 로프하강을 한다. 어둠 속 익숙하지 않은 지형에서 하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든든한 대장이 있어 모두 안전하게 하강을 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마운티니어 루트를 통한 하산이다. 경사가 심해 안자일렌을 하고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내려갔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하산길이다. 한참을 걸어 내려와서 어느 정도 안전하다고 판단됐는지 유학재 대장과 원기정 대원이 로프를 사렸다. 

    뒤쪽의 회색 텐트는 우리가 등반하는 날 강풍으로 날아가 버렸다. 큰 돌로 눌러 놓았는데도 바람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잠깐의 휴식 후 글리세이딩으로 마지막 설사면을 내려오니 이제는 완만한 눈길이다. 눈에 익은 모퉁이를 돌아서자 베이스캠프의 텐트에 불이 켜져 있고 강신일 대원이 우리를 마중 나왔다. 22시간에 걸친 등반은 이렇게 끝났다. 몇 시간 후, 론 파인에 내려와 바라본 휘트니 산에는 비구름이 잔뜩 끼어있어 산의 형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우리는 LA로 가는 차량에 몸을 실었다.


    글 인성식, 사진 이현상  emountain@emountain.co.kr
    <저작권자 © mountain,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글 인성식, 사진 이현상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안내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03076 서울시 종로구 혜화로 10-3(성인빌딩 4층)  |  대표전화 : 02)792-7010  |  팩스 : 02)792-8841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성구
    상호명 : (주)이산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 아 02925  |  등록일자 : 2013. 12. 11  |  발행인 : (주)이산미디어 이가예  |  편집인 : 이영준
    사업자번호: 106-87-11295  |  Copyright © 2001 mountain.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